<<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는 책 소개 그대로, 옷장 속 ‘침묵의 봄’ 그 잡채였습니다. 합성섬유(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옷에 유해화학물질을 덕지덕지 코팅한 결과 싸고 기능적이고 화려한 옷을 끊임없이 내놓는 ‘혁신’이 가능했죠. 하지만 그 뒤에는 심각한 환경과 건강문제가 발생했는데요. 정작 그 피해자들은 나는 안 그런데, 옷 때문에 그렇게 아프다는 게 말이 되냐? 는 비난 속에서 싸워야 했습니다.
유해물질로 범벅된 옷을 입고도 괜찮은 사람이 많은데, 왜 유독 이 책에 나온 승무원들은 집단적으로 크고 작은 건강 이상이 나타났을까요? 승무원이 처한 상황이 의류 속 유해물질의 영향을 극대화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광산이 위험한지 아닌지 탐지하기 위해 광산으로 들여보내는 카나리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승무원은 외부 공기가 차단된 밀폐된 환경 속에서 유니폼을 입고 장시간 비행을 합니다. 유해물질이 빠져나가거나 희석될 공기가 부족하고, 피부에 밀착된 꽉 끼인 옷을 오랫동안 입고 일합니다. 그 결과 유해물질의 영향이 다른 사람들보다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었어요. 그들이 예민하고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옷에 사용된 유해물질이 얼만큼 우리의 건강을 망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로 삼아야 합니다.
옷에도 전성분표시제가 필요하다!
화장품과 식품은 들어간 모든 성분을 표시하는 전성분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유해물질 파동으로 난리가 난 후 일회용 생리대도 전성분 표시제가 의무화되었습니다. 또한 생활화학제품 자발적 협약에 따라 일부 세제들도 환경부 ‘초록누리’를 통해 전성분을 공개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 보고된 수많은 건강 피해에도 불구하고 의류는 전성분 표시제가 적용되지 않아 도대체 뭐가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옷을 입고 피부 트러블이 생겼어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강력한 유해물질 규제가 필요하다!
유럽에서 화학물질의 안전성 자료를 등록하도록 하는 화학물질 평가 및 등록에 대한 법 ‘리치REACH’의 도입 후 다이옥신, 퓨란, 폴리염화바이페닐(PCB) 등 독성물질의 산업 배출량은 단 7년 만에 80%가 줄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럽 화학 회사의 직원들도 인정했다고 하는데요. (책 272쪽)
이처럼 강력한 화학물질 자료 등록과 평가, 그리고 공개는 독성물질의 사용을 줄이는데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패션업계는 아직 유해물질 규제와 관리가 요원합니다.
저자는 유럽환경국의 섬유 정책 담당관인 에밀리 맥킨토시의 말을 인용해 “기업들에게 적절한 행동을 강제하지 않고, 그저 자발적 선의에 맡겨 놓는다면 빠른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목격했습니다. 유럽연합이나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강력한 구속력을 지닌 규제를 실행하는 것이, 이른바 ‘그나마 나은’ 기업이 업계를 이끌어 가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효과가 훨씬 빠를 겁니다”라고 전합니다. (책 295쪽)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
마지막으로 저자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콕콕 짚어줍니다. 이 언니, 족집게 과외선생 포스임 ㅎㅎ
- 연구 자금 지원을 위해, 테스트 받지 않은 화학물질에 세금 및 관세를 부가한다. : 방수 재킷에는 7.1%의 관세가 부과되는 반면, 방수 처리되지 않은 재킷은 27.7%의 관세가 부과되는 현실… 하지만 방수 재킷에는 방수 처리를 위해 분해가 거의 안 돼서 ‘영원한 화학물질’이라는 별칭이 붙은 과불화화합물이 사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세금은 더 적게 매겨지죠. 저자는 이러한 제도를 바꿔 테스트 받지 않는 제품에 세금과 관세를 매겨 유해물질 연구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 화학 회사가 사용 중인 모든 화학물질을 등록하고 관련 연구를 공유하도로 요구한다.
-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의 독성 패션 검사 및 리콜 권한을 확대한다.
- 모든 화학물질을 개별이 아닌 계열별로 규제한다. 예를 들어 비스페놀A가 아니라 비스페놀류 규제, PFOA가 아니라 과불화화합물 (PFAS) 전체 규제
- 소비재에 내분비교란물질 사용을 금지한다.
- 환경오염과 근로자 건강에 대한 책임을 패션 기업에 부과하는 공급망 실사법을 통과시킨다.
- 위장환경주의에 속지 않는다.
- 패션 제품에 성분 목록을 요구한다.
치밀한 증거와 호소력 있는 문장으로 이 사건을 파헤치는 저자는 에코컬트 Eco Cult 라는 윤리적이고 독성 없는 패션, 뷰티, 생활용품 플랫폼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고 그래서 어째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면 에코컬트에서 독성 프리 브랜드와 대안제품들을 찾아봐도 좋을 거 같아요!
이 책은 ‘알짜(알맹이만 찾는 자들)’에서 함께 읽었는데요. 드라이클리닝서 사용되는 퍼클로로에틸렌이라는 발암물질 사용과 노출을 줄이기 위해 웻클리닝(wet cleaning)을 하는 세탁소 소개를 받았어요. 몇 군데 없어서 일부러 찾아가야 하긴 합니다. 서울에는 은평에 한 곳, 강남에 한 곳 총 두 곳이 있다고 합니다. 저자처럼 마지막에는 대안적인 세탁소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