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을 맞아 KBS에서 수신료의 가치를 빛낸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습니다. ✨
‘지속 가능한 지구는 없다’라는 제목으로 <탄소 해적>과 <재활용 식민지> 두 편으로 나누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속 가능’의 실태를 보여주었죠.
상당히 충격적이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내용이라 되도록이면 영상으로 시청각을 통해 충격 받으시는 걸 추천드리고요ㅎㅎ
여의치 않다면 아래 간단히 정리한 글과 사진을 확인해 보세요.
오래도록 곱씹고 싶어 사심을 담아 정리했습니다. 😉
2부 <재활용 식민지>에서는 선진국들의 높은 재활용률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동남아 국가들의 쓰레기 양이 왜 미국이나 중국 등 덩치 큰 나라보다 훨씬 많은 수치로 조사되는지에 대한 비밀이 밝혀집니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준비 되셨나요? 🧐
재활용 식민지
인도네시아 자와티무르; 플라스틱 땔감
검은 연기의 석회석 가마
인도네시아 자와티무르 한 마을에서는 검은 연기가 뒤덮은 이곳은 평범한 농촌이다. 거대한 연기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는 사람은 16세의 니나, 환경운동가이다. 연기가 나는 가마에 석회석을 넣고 높은 온도로 가열한 뒤 식히면 시멘트의 원료를 얻을 수 있다. 숨막히는 연기의 정체는 겹겹이 쌓여 있는 잘게 분쇄된 플라스틱 더미. 플라스틱 더미가 언덕을 이룬 이곳은 쓰레기 소각장이 아니다. 연소하며 높은 열을 내는 플라스틱은 석회 가마의 연료이다. 석회석 가마 근로자는 온몸이 플라스틱 범벅이 된채 꼬박 20시간 동안 땔감을 넣어야 한다.
- 수크리 (석회석 가마 근로자) “(상의 탈의,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맨몸으로 일하고 있다.) 기침이 계속 나긴 합니다. 피곤해서 그런가 보죠.”
예전에는 나무와 고무를 땔감으로 사용했지만, 100만 루피아(약 8만 5천 원)가 넘는 나무는 비싼 땔감이다. 플라스틱의 경우 30만 루피아(약 2만 5천 원)면 한 트럭 분량을 구매할 수 있는 저렴한 땔감. 불타는 플라스틱은 염화수소 등의 유해 가스와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을 뿜어낸다. 하지만 땔감 비용을 아끼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위험을 감수한다. 결국 이 검은 연기는 마을 전체를 오염시킨다. 그러나 이 연기가 시작된 건 인도네시아가 아니다.
- 아에시니나 아자라 (16세, 환경운동가) “저는 열여섯 살이고 환경운동가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시간 낭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평범한 소녀로 사는 게 더 좋을 거라고요. 공부하고 놀고 틱톡하고 그러면서요. 사람들이 저를 특이하다고 해도 저는 하던 일을 계속할 거예요. 미래에 이 지구에 살 사람은 바로 우리니까요.”
플라스틱 쓰레기의 국적과 종류는 다양하다. 이것이 니나가 목격한 재활용의 현실이다.
두부 공장의 땔감은 플라스틱
또 다른 공장, 입구에 가득 쌓여 있는 땔감은 역시나 플라스틱 쓰레기이다. 대부분 잘게 잘려있지만 형태가 남아있는 것도 있는데, 그중에는 한국의 쓰레기도 포함되어 있다. 원래는 이곳으로 흘러들어오면 안 되었을, 불법으로 처리된 쓰레기이다. 전 세계 191개국은 바젤 협약에 따라 플라스틱 폐기물의 수출입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공장의 연료는 수입된 플라스틱 쓰레기. 플라스틱 쓰레기를 태워 가공하는 공장에서 만드는 제품은 놀랍게도 두부이다. 전국으로 팔려나가는 이 지방의 명물은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에서 만들어진다.
- 파크리 (두부 공장 사장) “(플라스틱 쓰레기는) 트럭 한 대 분량이 28만 루피아(약 2만 4천 원)입니다. 나무는 트럭 한 대 분량이 40만 루피아(약 3만 4천 원)이에요. 개인적으로 나무를 더 좋아하지만 대부분 공장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사용하고 있어요. 유해가스가 생겨도 어쩔 수 없어요. 이웃 공장들도 할 말 없죠. 다른 연료를 사용할 여유가 없는데 어떡해요.”
땔감 비용을 한 품이라도 더 아끼려는 상인들에게 폐플라스틱은 당연한 선택이 되었다. 선진국을 떠난 플라스틱은 재활용될 거란 믿음이 무색하게 유해한 연기가 되어 음식과 뒤섞인다. 플라스틱 타는 냄새로 가득한 두부 공장에서 니나의 마음은 복잡하다. 유해물질은 먹거리를 통해 사람들의 몸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생계 앞에서 환경 문제는 사치가 되고 만다.
- 아에시니나 아자라 (16세, 환경운동가) “플라스틱 태우는 연기 때문에 냄개사 너무 안 좋고요, 지금 목 안도 간지럽고 불편해요. 이 연기는 정말 위험합니다. 이런 플라스틱 쓰레기 연기를 매일 들이마시면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분들은 계속 일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인도네시아인으로서 사실 많이 속상해요. 저는 정말 많이 노력했거든요. 여러 나라에 편지도 썼어요. 플라스틱 쓰레기 수출을 제발 멈춰달라고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인도네시아로 쓰레기를 보내는 나라들이 있어요. 정말 정말 실망스러워요.”
지켜지지 않는 선진국의 약속
[인도네시아로 수출한 폐플라스틱의 양]
1위 네덜란드 (84,852톤)
2위 독일 (27,287톤)
3위 미국 (20,471톤)
출처 : UN Comtrade Dastabase 2022
재활용 가능한 자원이라는 명목으로 선진국들은 인도네시아로 폐플라스틱을 보낸다. 세계 재활용률 1위를 자랑하는 독일을 비롯해 모두 국제 사회에서 지속 가능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국가들, ‘친환경 국가들’이 재활용률을 높여가는 동안 니나가 자란 마을에는 공터마다 수입 쓰레기가 쌓여가기 시작했다. 니나는 수입 쓰레기들이 어떻게 인도네시아까지 흘러들어온 건지 믿을 수 없었고, 혼란스러워 했다. 당시 12살이었던 니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환경운동가로서의 첫 발걸음이었다.
미국 대사관 앞 시위를 출발점으로 니나는 이 문제를 알려나갔다. 네덜란드 정부의 초청을 받기도 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호주 대사와 독일 대사를 만나 플라스틱 폐기물 수출 중단을 요청했다.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플라스틱 건강 정상회의에도 초대되어 당당히 목소리를 냈다. 12살 소녀의 용기에 세계는 놀랐고 호주 정부는 총리가 직접 나서 변화의 의지를 보였다.
-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폐)플라스틱, 종이, 유리를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건 우리의 쓰레기이고 우리가 책임져야 합니다.” (2019. 08. 09.)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는 대사관을 통해 답장도 받았기에 문제는 해결될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인도네시아로 플라스틱 쓰레기가 수입되고 있었으며, 각국의 깨끗함을 위해 인도네시아로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중국; 2018년 쓰레기 대란
동남아시아의 쓰레기 문제가 대두된 것은 2018년 세계 폐플라스틱의 절반 이상을 수입하던 중국이 쓰레기를 받지 않겠다고 빗장을 걸어 잠근 때부터다. 중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히자 선진국들은 폐플라스틱을 보낼 곳을 급히 찾았고 그 목적지는 동남아시아가 되었다.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으로 보낸 선진국의 쓰레기가 공개되며 쓰레기 문제는 곧 외교 문제가 되었다. 인도네시아 역시 새로운 종착지가 되었으나 2019년 인도네시아는 총 547개의 컨테이너를 되돌려 보내는 결정을 내린다. 말레이시아, 필리핀 또한 쓰레기를 되돌려 보내는 강경책을 내세웠다. 쓰레기를 수출한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9년 2월 필리핀에서 돌려보낸 우리의 쓰레기가 평택항에 도착했다. 수출길이 막힌 폐기물이 곳곳에 버려지며 전국 수백 개의 쓰레기 산은 점점 커져갔다. 우리가 믿던 재활용 시스템이 멈춰선 것이다. 국제사회의 관심은 곧 잦아들었고 1년 뒤 인도네시아의 폐플라스틱 수입량은 350% 증가했다.
그러나 상당수는 공식 통계에도 잡히지 않은 채 종이로 위장되어 수입된다.
수입이 합법인 폐지에 섞여 수입되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종이로 위장한 플라스틱
- 프리기 아리산디 (환경운동단체 에코톤 대표, 니나의 아버지) “인도네시아 제지 공장들은 폐지를 수입합니다. 하지만 수입된 내용물의 약 40%는 플라스틱 쓰레기입니다. 이건 식민지와 다름없어요. 선진국들은 재활용이 더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거든요. 선진국들은 그들의 강이 오염되는 것을 싫어해요. 그래서 돈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오염을 감수하는 나라를 찾아냅니다. 선진국들은 쓰레기를 내다 버릴 곳이 필요하고 인도네시아는 그 쓰레기를 환영하니까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진 거죠.”
폐지를 수입하는 제지공장 옆에는 자연스럽게 플라스틱 마을이 생긴다. 제지 공장에서 나온 쓰레기에서 종이와 플라스틱을 분리하는 주민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른바 ‘플라스틱 농부’라고 불린다. 분류한 걸 고물상한테 판매하는데, 100kg을 팔면 10만 루피아(약 8,500원)를 벌 수 있다. 니나는 플라스틱 농부들을 찾아다니며 수입 쓰레기를 살펴보는데 뜻밖의 물건을 찾을 때도 있다. 바로 플라스틱 쓰레기와 함께 수천 km를 여행한 세계 각국의 돈이다.
자와티무르는 푸르고 풍요로운 곳으로, 니나와 부모님은 이 자연을 사랑했다. 니나의 부모님은 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 니나에게 자연은 신나는 놀이터이자 지키고픈 친구이다.
플라스틱이 섞인 폐지를 수입하는 공장에서는 폐기물을 세척하며 수많은 폐수를 발생시킨다. 폐수는 곧장 인근의 브란타스 강(Sungai Brantas)으로 향한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폐수는 강의 색을 바꿔놓았다. 오염수는 24시간 매일 흘러나오고 강 하구에서는 이 물을 사용해 농사를 짓는다. 폐수 채수를 위해 뛰어든 니나에게 튄 오염수가 닿은 피부는 간지럽고 지독한 냄새가 난다. 공장 직원은 강으로 방출하는 물이 안전하다고 말한다. 물은 공장측의 말대로 정말 안전할까? 육안으로도 물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찌꺼기들을 확인할 수 있고,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 보면 1mm2보다 더 작고, 더 많은 미세플라스틱 조각들을 발견할 수 있다.
- 아에시니나 아자라 (16세, 환경운동가)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재활용’을 핑계로 인도네시아에 밀반입되고 있어요. 그 플라스틱들은 아주 작은 조각의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서 우리 몸으로 쉽게 들어와 신체 기관을 망가뜨리죠. 이 쓰레기를 만든 건 우리가 아닌데 피해를 입는 건 우리라는 게 정말 마음이 아파요.“
독일 베를린; 저개발 국가로 떠넘겨지는 선진국의 쓰레기들
플라스틱 재활용에 대한 기대
친환경 국가로 유명한 독일은 세계 최초로 생산자에게 플라스틱 수거 재활용 의무를 할당한 재활용 선진국이다. <카를스호르스트 창의력 초등학교> 독일의 학교에는 생태 교과목이 따로 있고, 아이들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재활용하는 것에 대해 철저히 배운다. 이에 독일의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46%로 세계 최고 수준. 재활용은 당연하고 가치있는 일로 여겨진다. <‘A’ 재활용 선별장> 실제로 독일의 재활용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컨베이어 벨트 위의 폐기물은 드럼 스크린, 자력 선별기 등을 거치며 90% 선별된다. 시설의 대부분은 무인으로 가동된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재활용하지 못하는 잔재물이 남는다. 보기에는 멀쩡한 플라스틱이지만 모두 소각 대상.
- 변 쉬비흐트 (‘A’ 재활용 선별장 운영관리자) “핵심은 적외선 분리 기계입니다. 포장지의 반사된 빛을 인식해 분리하는데요, 전자지문 같은 거죠. (···) 전체 반입량의 40% 또는 그 이상이 재활용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재활용할 수 없는 것은 복합 재질의 플라스틱입니다. 폴리머(플라스틱 원료)에 다른 것이 추가된 모든 것은 재활용 과정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플라스틱 재활용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간단하다.
재활용 마크가 있는 플라스틱을 잘 모으면 트럭이 와서 멀리 가져가고, 재활용 공장에서 그 물건들을 잘 녹이고 가공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낸다.
> 수십 년간 널리 받아들여진 재활용의 신화
> 재활용만 잘하면 지금처럼 플라스틱을 계속 사용해도 된다는 믿음
그러나 실제로 플라스틱의 대부분은 재활용되지 않는다.
오염되거나 너무 작거나 다른 종류의 플라스틱이 섞여있어도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OECD에 의하면 플라스틱 폐기물 중 약 9%만이 재활용된다. 19%는 소각, 50%는 매립되고, 22%는 통제를 벗어나 자연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리고 재활용이 어려운 수많은 저품질의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미국,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 동남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선진국의 높은 재활용률과 그 실체
- 미하엘 예들하우저 (지리학 박사, 독일 자연보존협회NABU 순환경제연구원) “독일 플라스틱 폐기물의 1/3은 말레이시아, 터키, 인도네시아로 갑니다.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로 폐기물을 수출하더라도 그 양을 독일의 재활용 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거든요. 수출을 안 하면 법으로 정해진 재활용 할당량을 지키기 어려워요. 독일 폐기물 처리에는 아직 수출이 꼭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독일과 같은 친환경 국가들이 수출을 통해 높은 재활용률을 달성하는 동안 개발도상국은 밀려드는 수입 쓰레기에 뒤덮이고 있다. 스스로의 쓰레기만 해도 벅찬데 선진국의 플라스틱 쓰레기까지 떠안게 된 것이다. 게다가 플라스틱 오염의 주범이라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 유윤 이스마와티 (국제 유해물질 제거 네트워크 IPEN 고문) “세계 바다 오염의 주범으로 개발도상국들이 비난받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나라들은 선진국들의 쓰레기까지 처리하는 이중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재활용률 80%를 달성했다고 주장하는 선진국들의 쓰레기 말이죠.”
선진국의 플라스틱 쓰레기에 단호히 맞서는 니나의 가족은 한국 문화의 팬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 가야 한국 쓰레기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니나의 가족은 틈틈히 수집한 수입 쓰레기들의 국적을 확인하는데 한국에서 온 쓰레기도 다량 발견된다.
- 아에시니나 아자라 (16세, 환경운동가) “어머니들, 아이들 할 것 없이 모두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요. 그래서 여기서는 한국이란 나라를 높게 보고 롤모델로 생각하죠. 그렇게 멋지고 영향력이 큰 선진국이 아직도 가난한 나라로 쓰레기를 버리고 있어요.“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청소년들의 기후 행동
인도네시아 자와티무르의 주도인 수라바야에서 니나와 뜻을 함께하는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와 수입되는 쓰레기 문제에 대해 시위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쓰레기장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공기를 마시는 게 힘들어요. 정말 우리를 사랑한다면 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왜 그대로 두시나요? 어른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요?”
“거부하자, 거부하자. 수입 쓰레기를 거부하자! 지금 당장 수입 쓰레기를 거부하자!”
“쫓아가자, 쫓아가자. 코피파 주지사를 쫓아가자! 지금 당장 코피파 주지사를 쫓아가자!”
니나와 친구들이 향한 곳은 주지사의 관저 앞. 몸와 마음이 지친 청소년들과 오염을 방관하고 있는 주지사, 그에게 수입 쓰레기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관저의 보안 담당자는 쓰레기 수거를 거절하며, 돌아갈 것을 말한다. 그에 굴하지 않는 활동가들은 편지와 사진만이라도 주지사에게 전달할 것을 요청하고 보안 담당자는 이를 받아들인다. 니나는 어른들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대한민국 천안시; 재활용되지 않는 재활용품들
우리나라는 독일과 함께 재활용 선진국으로 꼽힌다. 연간 약 700만 톤의 플라스틱이 재활용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는 드물다. 투명 페트병처럼 색상과 소재가 단일한 것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제품은 하나의 플라스틱처럼 보이지만 혼합된 재질의 플라스틱은 궁극적으로 재활용되지 않는다. 또한 플라스틱 안에 내용물이 들어 있는 경우,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내용물을 비우고 화학 처리해서 깨끗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굳이 재활용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단단한 형태를 가진 것만이 플라스틱은 아니다. 비닐도 어떤 성분으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찢어지거나 늘어나는 모양이 다르고 재활용 선별장에서 처리가 불가하기 때문에 모아서 위탁 처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73%이지만 여기에는 재활용이 어려워 공장 등에서 연료로 태운 플라스틱도 포함되어있다. 이를 제외하면 국내 플라스틱의 실질적인 재활용률은 27%에 불과하다. 27%에 해당되지 않는 것들은 오히려 처리비가 든다.
-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처리비가 톤당 작으면 10만 원, 크게 보면 20만 원 이상 들어가거든요. 이게 싫으니까 수입이라는 방식으로 저개발 국가로 가게 되면 적은 돈을 줘도 되니까요. 재활용으로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쉽게 쓰고 버리는 편리함으로 인기를 얻은 플라스틱은 본래 재활용을 목적으로 생산되지 않았다. 1980년대 이미 국내에서도 플라스틱 쓰레기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때 나온 해결책이 바로 재활용. 플라스틱 종류마다 숫자를 붙이고 재활용을 상징하는 삼각형 화살표를 표기해 ‘플라스틱이 재활용된다’라는 인식을 퍼뜨린 건 바로 플라스틱 제조 업계였다.
- 필리핀 위크 (환경운동단체 서프라이더 재단) “소비자가 스스로 도덕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건데요, 사실은 폐기물의 분류와 처리 등을 기업이 아닌 소비자, 자치단체 또는 국가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전략입니다. 재활용을 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정부 보조금과 연구 개발비가 지출되어 왔습니다.”
30년이 넘는 재활용 노력에도 플라스틱 생산량은 계속 늘어났다. 2060년 생산량은 지금의 약 3배가 예상된다. 향후 세계 석유 수요는 플라스틱 생산이 이끌어갈 것이다. 연료로써 사용이 줄더라도 석유가 시장에서 견고한 이유는 바로 플라스틱 생산 때문이다. 최근 플라스틱을 줄이자는 요구가 석유화학 기업을 향하는 이유이다. 페트병과 같은 일회용 플라스틱 소재를 생산하는 석유화학 기업이 곧 플라스틱 폐기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환경운동가들의 주장만이 아니다.
- 롭 본타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무부 장관) “화석 연료 및 석유 화학 업계는 반세기 동안 우리의 환경, 사람, 천연자원에 해를 끼치는 사기 캠페인을 벌여왔습니다. 사실 대다수의 플라스틱은 재활용할 수 없습니다. 실제 재활용률은 9%를 넘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세계에 플라스틱 오염 위기를 일으키고 또 악화시킨 것에 대해 화석 연료 및 석유 화학 업계를 최초로 수사할 것임을 선언합니다.” (2022. 04. 28.)
인도네시아 반텐; 푸르름을 잃은 땅
점점 더 많은 플라스틱이 만들어지는 동안 인도네시아의 플라스틱 산은 커져간다.
제지 공장의 포크레인 아래 몰려든 사람들은 폐지에 섞여 들어온 수입 플라스틱을 뒤진다. 이들은 공장 직원이 아니라 하루 먹고 살 돈을 벌기 위해 쓸만한 플라스틱 조각을 골라내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있는 축축하게 젖은 플라스틱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재활용과 지속 가능성을 약속했을 것이다. 플라스틱 조각을 골라내는 이의 손과 발은 피부색이 변했는데, 이 일을 시작하고부터 피부가 변하기 시작했고, 그 범위가 점점 넓어졌다. 돈이 없으니 선뜻 병원에 갈 수도 없다.
친환경 흐름 속에 세계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규모는 60조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제자리이고, 재활용 산업이 번창할수록 쓰레기 더미는 더 커져만 간다. 옛날에는 전부 논, 밭이었던 땅. 제지 공장이 땅을 사들인 후 이곳은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이들은 종일 쓸모 있는 것을 찾아보지만 벌이는 변변치 않다. 1kg에 2,000루피아(약 170원)을 받을 수 있다. 플라스틱을 골라내는 이들은 이러한 모습이 알려지면 제지 공장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까 겁이 난다.
이곳에서 재활용은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아니다. 미래세대를 위한 행동도, 지속가능한 약속도 아니다.
선진국들의 허울뿐인 약속
- 스콧 모리슨 (호주 전 총리) “바다를 질식시키는 플라스틱 오염에 맞서 호주는 긴급한 행동을 이끄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캐나다는 태평양, 대서양, 북극해까지 유해한 일회용 플라스틱을 금지할 것입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미래 세대를 위해 지구를 보호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역사가 심판할 것입니다.”
친환경 국가들의 희망찬 약속 넘어 푸르던 논밭은 그들의 플라스틱 무덤으로 변하고 있다. 쓰레기들은 국적을 숨길 수도 없다.
- 아에시니나 아자라 (16세, 환경운동가) “저를 가장 슬프게 하는 건 많은 나라의 정부가 빈말을 했다는 거예요. 약속만 하고 말뿐이었죠. 수입 쓰레기가 뉴스에 나오고 주목을 받으며 정부 관계자들은 갑자기 규정을 만들자며 서둘러요. 그러다 더 이상 아무도 주목하지 않으면 각 나라 정부는 이 문제를 완전히 무시해요. 다시 잊히고 마는 거죠.”
초등학생이었던 니나가 첫 편지를 쓴지 어느덧 5년이 지났다. 니나는 초등학교 후배들에게 쓰레기 줍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재활용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니나의 편지가 혼자만의 바람이 되지 않도록 쓰레기로 가득찬 세상의 슬픔을 알리고, 어떤 것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 아에시니나 아자라 (16세, 환경운동가) “힘이 빠질 때도 많았어요. 어른들에게 무시당하기도 하고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경험도 없으면서 왜 나서냐고. 마을에 사진을 찍으러 가면 찍지 말라고, 안 그러면 때리겠다는 협박을 받기도 했어요.”
- “특이한 사람이 된다는 건 피곤하고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특이한 사람들이잖아요. 미래에 환경이 여전히 오염되어 있다고 해도 자녀와 손자들에게 말해줄 거예요. 나는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요. 환경을 되돌리려고 너희를 위해 노력했다고 말해줄 거예요. 그래야 어른으로서 부끄럽지 않을 테니까요.“